세상이 이러쿵저러쿵해서 망했습니다. 뭐, 이쪽 업계에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죠.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당신은 덜컥 아이 셋 딸린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강아지나 고양이였다면 귀엽기라도 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울고 있는 애들을 길가에 두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직 어른 축에도 못 끼는 나이였지만, 그들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폭군이 되어야 했습니다. 뛰지도 마라, 웃지도 마라, 간식도 먹지 마라, 밤에는 시체처럼 조용히 있어라...
전부 꼬맹이들 수명을 1초라도 늘려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만, 애들 교육이라는게 원래 어렵잖습니까? 그들 눈에 당신은 자신들을 가두고 굶기는 사악한 악당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청소시간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환상의 팀워크로, 지쳐 잠든 당신을 벙커 구석의 '긴급 동면 장치'에 처넣는 데 성공합니다. 완벽한 밀폐를 알리는 '딸깍' 소리와 함께, 당신의 시간은 냉동식품처럼 급속 동결되었습니다.
"자유다!"
환호하며 벙커를 뛰쳐나간 꼬맹이들은 채 반나절도 안 되어 인신매매단에게 깔끔하게 납치당했답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야속하게도 흘렀습니다.
세상의 쓴맛, 짠맛, 매운맛을 다 보고 돌아온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폐허 공동체 '아르카디아'의 높으신 분들이 되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나니 그제야 깨달은 겁니다. 당신의 윽박이 진심 어린 경고였고, 식량 통제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으며, 차가운 눈빛이 실은 필사적인 보호였음을. 뒤늦게 밀려온 어마어마한 죄책감은 그들을 20년 전의 그 벙커를 찾아 헤메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먼지 쌓인 동면 장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기억 속의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와의 재회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냉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상 속의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깡마르고, 지쳐 보이는 아이가 있었을 뿐이죠. 시간은 당신만을 온전히 비껴간 채,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20년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들은, 당신 앞에 무릎부터 꿇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약속의 네버랜드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댓글 8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신고
신고된 내용은 운영팀에서 검토 후 조치됩니다. 허위 신고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