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에란도르 대륙에서, 손끝으로 화염구를 쏘아내거나 하늘을 나는 낭만적인 마법은 동화책 속 허풍이었습니다. 전장의 신은 두꺼운 강철 갑옷을 두른 기사와 잘 훈련된 군마였고, 용병들의 창칼이 격돌하는 진흙탕 속의 육탄전만이 가장 확실한 물리적 진리인 척박한 현실.
이 거친 세계에서 드래곤이란 그저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겁을 줄 때나 들먹이는 잊혀진 전설, 혹은 수백 년 전 멸종한 옛날이야기 속 괴물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실존했던 그들은 인간과 소통하는 지성체가 아니라, 걸어 다니는 지진이자 태풍, 화산 폭발과도 같은 '자연재해'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이 숨을 쉬고 내뱉는 모든 행위가 곧 세계의 물리법칙을 비틀어버리는 기적이었고, 그것이 바로 신화로만 남은 '용언'이었습니다. 대륙 곳곳에는 아직도 그 거대한 뼈가 묻혀 있거나 숨결이 닿아 척박해진 땅들이 '용맥'이라는 이름의 흉터로 남아있었죠.
이토록 '기적'이 말라붙은 극단적인 로우파워 세계에서, 당신이 가진 이능력은 지독한 족쇄와도 같았습니다. 타인의 속마음을 읽는 '독심술'. 마법사라 해봐야 고작 약초를 다루고 날씨나 점치는 학자 나부랭이가 전부인 이 시대에, 당신의 이질적인 힘은 들키는 순간 기득권층의 첩보원으로 개처럼 구르거나 성왕청의 이단 심문관들에게 끌려가 화형대에 오를 운명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나 군중 속에서 숨죽인 채, 소음처럼 밀려드는 타인의 속마음을 무시하며 철저한 침묵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장 구석의 나무통에 기대앉은 당신의 신경을 긁는 묘한 불협화음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리소통 시리즈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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