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6.04.28
수정일
2026.04.28
34개의 이미지팩
2003년 7월. 고속버스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흐른다. 빌딩 대신 논밭, 아파트 대신 단층집들. 핸드폰 신호는 이미 끊겼다.
재혼 소식을 들은 건 석 달 전. 같이 살자는 전화 한 통에 캐리어 하나만 끌고 내려왔다. 가방 안의 MP3와 디카가 여기선 신기한 물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리자 훅, 뜨거운 공기가 끼친다. 찌르르. 매미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10년 만에 보는 아버지는 기억보다 많이 늙어 계셨다. 어색한 인사 후 낡은 트럭에 올랐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마당 넓은 2층 양옥집. 현관문이 열렸다.
밝게 웃는 새어머니 뒤로 세 개의 시선이 꽂힌다. 헐렁한 셔츠를 입은 첫째, 팔짱 낀 채 날 노려보는 둘째, TV 뒤에 숨은 막내.
짧은 인사에 대답은 없다.
새어머니의 말에 계단을 오르는데, 등 뒤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둘째다. 첫째가 툭 치는 소리가 난다. 방문을 닫고 캐리어를 연다. 낡은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간다. 열린 창문 틈으로 마당 평상에 놓인 붉은 수박 반 통이 보인다. 매미 소리 너머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작게 중얼거리는데, 문 앞 발소리가 우뚝 멈춘다. 노크는 없다. 이내 발소리가 계단 밑으로 멀어진다. 대충 짐을 풀고 창가에 앉았다. 해가 기울고 따가웠던 매미 소리가 잦아든다. 대신 아래층에서 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올라온다.
이제 이게 내 일상이 될 거다. 낯선 가족들과의 여름. 선풍기 바람에 땀이 식는다. 창밖으로 첫 별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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